머리를 잃고 나서야 깨달은 ‘행복’ — 한 고객님이 가르쳐준 이야기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실루엣과 빛의 고리 (해무리)
머리카락을 잃고 나서야 깨달은 ‘행복’ — 한 고객님이 가르쳐준 이야기|Hairdresser Taka

10년 전, 한 고객님이 암에 걸렸습니다.
항암 치료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이 전부 빠졌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남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병은 완치되었고, 머리카락도 이전처럼 풍성하게 자랐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그분의 과거는 ‘헤어스타일’을 넘어
‘삶의 방식’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그분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저의 살롱에 오십니다.
상담 시간이 되면
“이것도 좋네요”, “아, 저것도 예뻐요”, “이런 것도 해보고 싶어요”라며
마치 헤어스타일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유행이나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지금 이 순간의 기분’과 ‘어울리는지’를 기준으로,
자유롭게 스타일을 즐기고 계십니다.

흰머리가 있어요?
“그럼 파란색으로 해볼까요?”, “빨간색도 좋겠네요”
마치 흰머리조차도 ‘즐거움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곱슬머리예요?
“여기가 조금 더 웨이브가 강해요”
“그래서 이 움직임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로 하고 싶어요”
자신의 모발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 외모, 개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게다가 그것을 ‘즐기는’ 모습.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의 강함

머리카락이 완전히 없었던 경험.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과 갈등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계십니다.

곱슬머리여도, 흰머리가 있어도,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
그렇게 느끼시기 때문에 어떤 제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고,
거울 앞에서 웃으십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일은 정말 멋진 직업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있는 것’을 본다는 생각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없는 것’에 시선을 두기 쉽습니다.

머리카락이 많으면 “볼륨을 좀 줄이고 싶다”
적으면 “좀 더 풍성했으면 좋겠다”
곱슬머리면 “곧게 펴고 싶다”
직모면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바람을 실현해 드리는 것도 제 일이지만,
그 전에, 자신이 가진 ‘소재’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그분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전하고 싶은 것

저는 미용사로서 기술을 갈고닦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 ‘머리카락을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고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 자신도 새삼스럽게 깨닫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은,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머리숱이 적어도, 흰머리가 있어도, 곱슬머리여도,
그 머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마음 자체가
아주 멋진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살롱을 찾아주시는 고객님들께는
“스스로를 더 좋아하게 되어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가위를 잡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생의 일부입니다.

그래서야말로, 진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를 마주하고 싶습니다.